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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안녕하세요 저 마거릿이에요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

by 북카루 2024. 5. 29.

 

넷플릭스에 신작 영화로 [안녕하세요 저 마거릿이에요] 라는 작품이 올라왔다.

제목이 익숙하다. 내가 어릴 때 초등학생 추천 도서 목록에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 라는 책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 특히 소설을 무척 좋아했는데도 이 책은 읽어 보지는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주인공 소녀가 선량한 기도를 열심히 하는 내용일 것 같아서 따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좀 후회했다.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어릴 때 읽어 볼 걸 그랬다. 

 

주디 블룸 (Judy Blume, 1938~) 은 미국의 아동 소설 작가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국민 작가' 라고나 할까?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릴 때 다 읽는 어린이 소설들을 썼다고 한다. 미드나 영화에서도 가끔 인용되는 것을 본 적 있다. 위 사진에서 가운데 서 있는 분이다. 

 

주디 블룸의 작품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 은 우리나라에는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 라는 제목으로 비룡소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되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21849

 

그런데 넷플릭스에서는 이 작품 제목을 제대로 해 놓지 않았다. 포스터는 영어 제목이 들어간 것을 그대로 띄워 놓아서 한국어 제목을 알수 없다. 영화 재생 화면을 클릭한 다음에야 [안녕하세요 저 마거릿이에요] 라고 한국어 제목을 볼 수 있는데 제목 번역이 좀 성의없게 느껴진다. 어쩌면 'God' 을 어떻게 한국어로 옮길지 고민하다가 통으로 빼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하느님이 한국에서는 종교에 따라 뜻이 다르게 사용되니까. 

 

 

소박하고 따뜻한 성장영화이겠거니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마자 놀랐다.

주인공 마거릿의 할머니 역할로 미국의 대배우 캐시 베이츠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니 넷플릭스여, 캐시 베이츠가 나온다고는 안 했잖아요. 

 

마거릿의 할머니(캐시 베이츠)는 등장하자마자 마거릿의 어머니, 자신의 며느리와 보이지 않는 갈등을 숨기고 있음을 잘 연기한다. 그런데 그 마거릿의 어머니 = 며느리 역할의 배우가 누구냐면 바로 레이첼 맥아담스다!  아니 넷플릭스여 레이첼 맥아담스가 나온다고도 안 했잖아요. 성의없이 제목 번역도 안 한 영문 포스터만 달랑 띄워 두면 어떻게 알고 클릭을 합니까. 레이첼 맥아담스는 심지어 이 영화로 고섬(Gotham) 독립영화상 조연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캐시 베이츠와 레이첼 맥아담스의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그런데 주인공 마거릿 역할의 배우도 이 대선배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연기를 너무 잘 한다. 영화를 다 보고 검색해 보니 역시나 경력직 배우다. 바로 마블 [앤트맨], [앤트맨 앤 와스프] 에서 앤트맨의 딸 '피넛(캐시)' 으로 출연했던 아역 배우. 이름은 애비 라이트 포트슨(Abby Ryder Fortson).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 는 내가 어릴 때 책 제목만 보고 짐작한 것과는 아주 다른 영화였다.

마거릿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소녀가 아니라 종교가 없다. (아직은 없다.) 여름 캠프에서 수영과 축구, 연극을 신나게 즐기고 돌아온 명랑한 12살 소녀 마거릿은 뉴욕의 아파트에서 뉴저지 교외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사를 앞두고 마거릿은 불안한 마음으로 혼자 있던 방에서 신을 부르는데 사실 마거릿은 어느 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른다. 아버지는 유대교인, 어머니는 기독교인인데 두 사람은 종교 차이 때문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마거릿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아예 연을 끊어 버렸을 정도다. 마거릿의 부모님은 이런 경험 때문인지 마거릿에게는 굳이 종교를 정해 주지 않고 어른이 되면 원하는 대로 선택하라고 한다. 유대교인인 마거릿의 할머니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마거릿을 유대교인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엊그제까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재밌게 놀았던 마거릿은 뉴저지로 이사오자마자 비키니 수영복을 빌려 주는 대담한 소녀 낸시와 친구가 되고, 4명의 친구들끼리 비밀 클럽도 만든다. 그리고 사춘기에 맞이하는 신체 변화, 브래지어, 월경, 생리대, 이성 교제 등에 하나씩 호기심을 갖게 된다. 내용이나 묘사가 1970년대가 배경이라 조금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도 2020년대 영화답게 표현하려고 한 노력이 없지는 않다. 

 

마거릿은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신을 찾는다. ('왜 혼자 있을 때만 신을 찾게 될까요?') 유대교 사원, 교회, 성당 등을 다양하게 체험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는 신이 없다고 생각해요!' 라고 소리를 치기도 한다. 마거릿은 영화 마지막까지 한 종교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사계절에 걸친 경험과 고민이 마거릿의 성장에는 좋은 자양분이 된다.

 

레이첼 맥아담스의 어머니 연기도 영화상 후보에 오를 만 했다. 언제 이 배우가 엄마 역할을 하게 되었나 세월이 무상하긴 하지만... 뉴욕의 화가였다가 뉴저지 교외의 주부로 변신하느라 쩔쩔매고, 갑자기 브래지어를 사 달라는 딸의 요구에 당황하지만 어머니 역시 영화 막바지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 준다. 모범적인 줄거리의 성장 영화다.